국립공원 지리산 반야봉(1,732m) 산행기
(2010년 2월 15~16일)

<산행코스>
설 연휴를 이용해 여자친구와 지리산 산행을 계획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을 찾으면 천왕봉을 기점으로 산행을 하곤 합니다. 중산리에서, 혹은 백무동에서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을 밟기 위해, 그리고 일출을 보기위해 분주히 움직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지리산에서 약간은 소외된 봉우리, 반야봉을 찾았습니다. 반야봉은 지리산 주 능선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로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봉우리 입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종주를 할 때 시간에 쫓기다보면 빠트리기 쉽상인 봉우리지요. 지리산의 3대 봉우리 중 하나인 반야봉인데, 그런 천대를 받는 것이 안타까워 애써 시간을 내서 반야봉을 찾아보았습니다.
산행의 출발은 성삼재 휴게소. 오후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노고단 산장에 올라 노고 할매의 얼굴을 한 번 어루만져 준 후 숙박을 준비했습니다. 자리를 잡아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노고단 정상을 향했습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고요한 겨울밤의 적막은 산행을 하는 이로 하여금 평안한 마음을 갖게 해줍니다.


산장에서 하루를 묵은 후, 다음 날은 새벽부터 산행을 서둘렀습니다. 왜냐하면 반야봉에서의 일출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죠. 지리산의 날씨가 좋은 것 같아, 멋진 일출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산행을 하면 하늘이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는 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늘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맑은 날씨도 기대할 수 없겠지요? 평소 하늘의 사랑을 받기 위해 덕을 많이 쌓아야겠습니다.



예전 고려시대에 반야라는 인물이 실존했습니다. 반야는 다름아닌 고려 말 우왕의 어머니였죠. 우왕의 아버지는 모두 알다시피 공민왕입니다. 최근 영화 쌍화점에 소개된 인물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조선의 역사학자들은 우왕을 신우라는 이름으로 역사서에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반야의 본래 남편이 신돈이라는 이유 때문에 신돈의 성인 신을 따서 신우라고 칭한 것이지요. 신돈과 공민왕, 그리고 반야. 수백년 전 살았던 그들의 생과 사랑, 그 속에 담겨 있는 역사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 중심에 있었던 반야의 마음이 궁금했던 반야봉 산행이었습니다.



산행의 하산길은 뱀사골 계곡으로 정했습니다. 삼도봉을 지나 화개골에 내려서면 뱀사골 갈림길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정표에는 9.2km라는 어마어마한 길이가 표시되어 하산하는 이들로 하여금 기가 죽게 만듭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맙시다. 긴 계곡을 품고 있는 만큼, 멋진 광경이 있을 것이고, 그런 만큼 계곡이 크고 시원 시원해서 걷기도 편합니다. 또한 공단에서 관리를 잘 해두어 호젓한 겨울 계곡 산행을 즐기기엔 안성맞춤인 곳이 바로 뱀사골 계곡입니다.

지리산은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곳곳에 간직하고 있는 민족의 피가 서린 산이기도 합니다. 워낙 많은 계곡을 품은 큰 산이다보니, 참 많은 영혼들이 골골이 숨어들어 자신의 이상을 펼치려 노력했었죠. 어머니의 산이라는 지리산 답게 그 영혼들 모두를 소중히 품고 있나 봅니다. 뱀사골 계곡 날머리에 다다를 즈음, 예전 지리산 빨치산들이 자신들의 기관지를 발행한 시설이 있었던 커다란 바위와 마주쳤습니다. 그곳 앞에는 지리산 빨치산들에 대한 간단한 안내판이 서 있었습니다. 지리산 빨치산은 1955년에 공식적으로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지리산 장군, 아니 신처럼 여겨졌던 이현상의 죽음을 기점으로 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뱀사골 계곡 인쇄소에서 기관지 발행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널리 알렸겠지요? 길고도 긴 뱀사골 계곡. 뱀처럼 굽이 굽이 길어서 뱀사골일까요, 아니면 도를 닦다 뱀이된 스님을 기리기 위해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요? 어찌되었든 지리산이 품은 뱀사골은 현대사의 아픔도 품고 있습니다.
지리산 탐방코스 중 젊은 연인이 부담없이 다녀 올 수 있는 길. 노고단 산장에서 하루를 묵으며 일상에서 벗어난 여유도 느낄 수 있는 길. 노고단에서 볼 수 있는 야경, 반야봉에서의 일출, 뱀사골에서의 계곡 산행, 거기에 우리 역사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는 길. 한 번 가보고 싶지 않으신가요?